20만 명이 살았지만 주인을 모르는 도시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고원에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기묘한 도시 하나가 폐허로 남아 있다. 전성기에는 무려 20만 명이 살았고, 당시 지구 전체에서 손꼽히게 큰 대도시였다. 그런데 이 도시를 세운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언어를 썼는지, 스스로를 무엇이라 불렀는지 오늘날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우리가 이 도시를 부르는 이름조차 원래 주인의 것이 아니다. 이 거대한 침묵의 도시가 바로 테오티우아칸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마야의 신전은 그것을 세운 문명의 이름과 문자, 왕의 계보까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테오티우아칸만은 예외다. 규모로 보면 고대 세계 최정상급이면서도, 그 주인의 정체는 완전한 어둠 속에 잠겨 있는 것이다.

아즈텍이 붙인 별명, 신의 도시
흔히 사람들은 테오티우아칸을 아즈텍의 도시로 오해한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다. 이 도시가 세워진 것은 약 2천 년 전이며, 우리가 아는 아즈텍 문명이 이 땅에 도착한 것은 도시가 폐허가 되고도 700년이 더 지난 뒤였다. 흙에 반쯤 묻힌 거대한 피라미드를 마주한 아즈텍인들은, 이것이 사람의 손으로 지어졌다고 믿지 못했다. 그들은 이곳을 신들이 세상을 창조한 무대로 여겨 자신들의 언어로 신의 도시라는 이름을 붙였고, 그 별명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아즈텍의 지배자들은 정기적으로 이 폐허를 순례하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이 신성한 장소에서 빌려 왔다. 다시 말해 아즈텍조차 이 도시를 자신들보다 훨씬 위대한 조상의 유산으로 우러러본 셈이다. 하지만 그들도 이 도시를 실제로 세운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는 알지 못했다.
성벽 없는 대도시
테오티우아칸의 규모는 상상을 압도한다. 도시 전체 면적은 약 20제곱킬로미터에 달했고, 도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대로는 길이가 2킬로미터를 넘었다. 그 양쪽으로는 수백 채의 다층 주거 단지가 계획적으로 배치돼 있었다. 각 주거 단지는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아파트와 비슷한 구조였으며, 내부에는 안뜰과 배수 시설까지 갖춰져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거대한 도시에 방어를 위한 성벽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 도시가 오랜 세월 외부의 위협에서 비교적 자유로웠거나, 혹은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지녔음을 암시한다.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마야 도시의 기록에서도 테오티우아칸에서 온 사절의 흔적이 발견될 만큼, 이 도시의 손길은 중앙아메리카 전역에 미쳤다.

죽은 자의 거리를 걷다
도시의 중심축은 아즈텍인들이 죽은 자의 거리라 부른 넓은 대로다. 그들은 길 양쪽에 늘어선 거대한 구조물을 왕들의 무덤이라 착각했다. 이 길의 끝과 옆으로는 두 개의 상징적 건축물이 솟아 있다. 바로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다. 태양의 피라미드는 높이가 약 65미터, 밑변 한 변의 길이가 220미터를 넘어, 부피만 놓고 보면 이집트의 대피라미드에 견줄 만하다.

놀라운 점은 이 정교한 건축이 어떤 설계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시 전체가 치밀한 계획 아래 배치된 것이 분명한데, 그 계획을 세운 지식과 기술의 문서는 단 한 조각도 발견되지 않았다. 더욱이 태양의 피라미드는 특정 천문 현상과 정확히 맞물리도록 방향이 설정돼 있어, 이들이 상당한 수준의 천문 지식을 갖췄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지식이 어떻게 축적되고 전수됐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신들이 태양을 띄운 무대
아즈텍인들에게 이 폐허는 단순한 옛 도시가 아니었다. 그들의 구전 신화에 따르면, 세상이 어둠에 잠겼을 때 신들이 이 도시에 모여 누가 태양이 될지 논의했다고 한다. 한 신이 불 속으로 몸을 던져 태양이 되었고, 그렇게 세상에 다시 빛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아즈텍의 지배자들은 이 신화의 무대를 순례하며 자신들의 권위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정작 이 무대를 지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조차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신화가 역사를 대신하고 있었던 셈이다.

풀리지 않는 네 가지 수수께끼
테오티우아칸이 남긴 수수께끼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문자의 부재다. 이웃한 마야 문명이 정교한 기록 체계를 발전시킨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해독 가능한 문자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둘째는 왕의 부재다. 이집트나 마야처럼 화려한 왕의 무덤이 이 도시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이 도시가 한 명의 절대 군주가 아니라 여러 집단의 협의체에 의해 다스려졌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셋째는 언어다. 이들이 사용한 말이 무엇이었는지 학계는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넷째는 돌연한 붕괴다. 세계 최대급 도시가 어느 순간 불에 타고 버려진 이유는 지금도 논쟁의 한가운데 있다.

800년이라는 아득한 간극
시간의 축을 이해하면 이 도시의 신비는 한층 깊어진다. 테오티우아칸의 전성기는 서기 1세기부터 6세기 무렵이었다. 반면 아즈텍 제국이 이 지역에 등장한 것은 14세기 이후로, 두 문명 사이에는 800년에 가까운 간극이 존재한다. 아즈텍인에게조차 이 도시는 손댈 수 없는 신성한 고대의 유물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고대 로마를 바라보는 거리보다도 먼 과거였던 셈이다. 이런 시간의 깊이 때문에, 이 도시에 관한 기억은 신화와 전설로만 전해질 뿐 정확한 역사로는 남지 못했다.

불에 탄 흔적이 말하는 것
도시의 몰락은 극적이었다. 서기 550년을 전후해 도시 중심부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주목할 점은 불에 탄 흔적이 도시 전역이 아니라 신전과 지배층의 구역에 집중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외부의 침략보다는 내부의 균열, 즉 지배 체제에 대한 반발이나 사회적 붕괴를 시사한다. 오랜 가뭄과 식량 위기가 겹치면서 시민들이 지배층에 등을 돌렸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리고 서기 750년경, 한때 세계 최대급이던 이 도시는 완전히 버려졌다. 20만 명에 달하던 인구는 뿔뿔이 흩어져 중앙아메리카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빗물이 열어젖힌 지하 통로
2003년, 폭우가 쏟아진 뒤 깃털 달린 뱀의 신전 앞마당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고고학자 세르히오 고메스는 그 구멍 아래로 내려가, 2천 년 가까이 봉인돼 있던 지하 통로를 발견했다. 조사단은 소형 탐사 로봇까지 동원해 100미터가 넘는 통로를 조금씩 파 들어갔다. 통로는 신전의 정중앙 아래를 향해 곧게 뻗어 있었고, 곳곳에는 의도적으로 봉인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끝에서 발견된 것은 수천 점의 정교한 유물과, 바닥과 벽을 뒤덮은 액체 수은의 흔적이었다. 조사단은 이 통로가 단순한 창고가 아니라, 어떤 상징적 의미를 담은 신성한 공간이었을 것이라 확신했다.
신전 지하에 흐르는 은빛 강
수은은 자연에서 그냥 얻을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광석을 높은 온도로 가열해야만 추출할 수 있는, 다루기 까다롭고 위험한 금속이다. 고대인이 이 물질을 신전 지하에 강처럼 부어 둔 이유는 지금도 논쟁거리다. 일부 학자들은 그것이 지하 세계를 흐르는 강, 혹은 죽음 너머의 세계를 상징한 것이라 해석한다. 수은 특유의 은빛 광택이 물처럼 흐르며 빛을 반사하는 모습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나타내는 신비로운 장치였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위험한 물질을 대량으로 다룰 줄 알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 문명의 기술 수준을 다시 보게 만든다.

이름 없는 건설자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만든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유물 분석 결과, 이 도시에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다양한 집단이 구역을 나눠 함께 살고 있었다. 오늘날로 치면 특정 민족의 거주 구역이 도시 안에 따로 존재했던 것이다. 테오티우아칸은 한 민족의 도시가 아니라 고대 세계의 국제도시에 가까웠다. 강력한 왕 한 사람 대신 여러 집단이 힘을 나눠 다스렸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들이 스스로를 무엇이라 불렀는지, 어떤 신을 진짜로 믿었는지는 재가 된 신전과 함께 영원한 침묵 속에 묻혔다. 다민족이 평화롭게 공존한 이 거대 도시가 왜 스스로 무너졌는지, 그 답은 아직도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마치며: 재로 남은 문명의 목소리
테오티우아칸은 인류 역사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위대한 문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20만 명의 삶과, 신전 지하에 부어진 은빛 강까지, 이 모든 것을 만든 사람들의 진짜 이름을 우리는 끝내 알지 못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밀림과 사막 아래에는 우리가 이름을 붙여 주기만을 기다리는 또 다른 도시가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침묵의 도시는 오늘도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역사의 목록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빈칸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테오티우아칸은 조용히 되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