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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랄: 무기도 성벽도 없던 아메리카 최초의 도시, 5천 년 전 페루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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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한복판에서 깨어난 5천 년 전의 도시

페루 북부, 태평양에서 20킬로미터쯤 떨어진 마른 수페 계곡에는 오랫동안 자연이 빚은 흙산으로만 여겨지던 언덕들이 있었다. 사방이 온통 모래인 이곳에서 유일하게 강을 따라 좁고 푸른 띠가 이어졌고, 그 한가운데 언덕들이 조용히 솟아 있었다. 아무도 그 안에 도시가 잠들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발굴이 시작되자 언덕 속에서는 계단과 광장, 그리고 여섯 개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시의 이름은 카랄. 지금까지 알려진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였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도시가 세워진 시기였다. 카랄의 피라미드가 올라가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5천 년 전, 지구 반대편 이집트에서 기자의 대피라미드가 세워지던 바로 그 시절이었다. 두 문명은 서로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한 채, 거의 같은 시기에 하늘을 향해 거대한 구조물을 쌓아 올렸다.

카랄은 흔히 노르테치코 문명, 혹은 카랄-수페 문명이라 불리는 안데스 최초의 복합 사회를 대표하는 도시다. 이 문명은 페루 중부 해안의 여러 강 계곡에 걸쳐 스무 곳이 넘는 정착지를 남겼고, 카랄은 그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정교한 중심 도시였다.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오랜 논쟁은, 이 사막 강가의 도시가 발굴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축구장 800개 넓이, 그러나 그릇 한 조각 없는 도시

발굴이 진행되면서 카랄의 규모가 드러났다. 도시가 자리한 땅은 축구장 800개를 합친 것과 맞먹는 626헥타르에 달했고, 그 안에는 여섯 개의 피라미드가 있었다. 가장 큰 피라미드는 높이가 18미터, 밑변은 축구장 두 개를 나란히 놓은 크기였다. 이런 구조물을 세우려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매달려야 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렇게 거대한 도시를 짓고도 사람들은 그릇 하나 굽지 않았다. 토기가 단 한 조각도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도자기가 없는 문명이 어떻게 이토록 정교한 도시를 운영했는지는 지금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카랄은 이른바 선(先)토기 시대의 도시였고, 그 사실 자체가 이 문명의 특별함을 말해준다.

무기도 성벽도 없는 문명

카랄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토기만이 아니었다. 고고학자들은 도시를 지키는 성벽을 찾았지만 없었다. 무기고를 찾았지만 없었다. 창끝 하나, 방패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불에 타 무너진 집도, 성난 군중이 부순 신전도 없었다.

같은 시대 다른 지역의 문명들이 이웃과 다투며 요새를 쌓아 올릴 때, 카랄 사람들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1천 년 가까이 이어진 이 도시에서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흔적은 뚜렷하게 남아 있지 않았다. 무기 없이 수천 명을 한자리에 모은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 답의 실마리는 뜻밖에도 도시 한복판의 광장에서 나왔다.

물론 카랄에 갈등이나 위계가 전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우려면 많은 사람을 조직하고 이끄는 지도력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신분의 차이도 생겨났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권력이 정복과 무력이 아니라 종교와 의례, 그리고 경제적 협력을 통해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카랄은 힘이 아니라 믿음과 이익으로 사람들을 묶은 도시였다.

광장에 울려 퍼진 음악

도시 한복판 광장에서 고고학자들은 새의 뼈를 깎아 만든 피리 32개를 찾아냈다. 콘도르와 펠리컨의 날개뼈에 정교하게 구멍을 뚫어 만든 악기였다. 이는 5천 년 전 이 광장에서 사람들이 다 함께 음악을 연주했다는 뜻이었다.

발굴을 이끈 고고학자 루스 샤디는 이 도시를 두고 “이 도시를 하나로 묶은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함께 나눈 믿음이었다”고 말했다. 무기 대신 악기가, 공포 대신 축제가 이 도시를 움직였던 것이다. 카랄의 광장은 군대의 사열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음악을 나누고 의식을 치르는 공동의 무대였다.

바다와 산을 잇는 거대한 그물망

카랄이 무기 없이 번영할 수 있었던 비밀은 거래에 있었다. 이 도시는 바다와 산을 잇는 거대한 시장이었다. 해안 마을 사람들은 그물로 잡은 멸치와 조개를 산 안쪽으로 보냈고, 카랄의 농부들은 강가에서 목화를 길러 해안으로 내려보냈다.

목화는 다시 튼튼한 그물이 되어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이 순환의 한가운데에 카랄이 있었다. 모두가 서로를 필요로 했기에 누구도 이웃을 정복할 이유가 없었다. 싸움으로 얻는 것보다 거래로 얻는 것이 훨씬 컸던 것이다. 카랄의 평화는 이상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상호 의존의 결과였다.

지구 반대편의 쌍둥이, 그러나 다른 선택

카랄의 피라미드가 올라가던 그때, 이집트에서는 기자의 대피라미드가 세워지고 있었다. 두 문명은 넓은 바다와 대륙으로 완전히 갈라져 서로를 전혀 몰랐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거대한 돌과 흙을 쌓아 올렸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무덤이었지만, 카랄의 피라미드 안에서는 왕의 시신도, 황금도 발견되지 않았다. 카랄에는 절대 권력을 과시하는 지배자의 무덤이 없었다. 이 도시를 누가 어떻게 다스렸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두 문명이 서로를 전혀 모른 채 거의 같은 시기에 피라미드라는 형태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인류가 거대한 기념물을 향해 나아가는 어떤 보편적인 충동을 지녔음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충동이 향한 목적지는 완전히 달랐다. 한쪽은 죽은 왕을 위한 영원한 무덤으로, 다른 한쪽은 살아 있는 공동체를 위한 광장으로 나아갔다.

스스로 도시를 덮고 떠난 사람들

카랄의 이야기는 천 년에 걸쳐 흘러간다. 약 5천 년 전 사람들이 마른 계곡에 처음 모여 흙벽돌을 쌓기 시작했고, 수백 년에 걸쳐 도시는 여섯 개의 피라미드를 거느린 중심지로 자라났다. 이 시기 카랄은 스무 개가 넘는 이웃 마을을 잇는 어머니 도시였다.

그러다 약 3천8백 년 전, 무언가가 조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광장의 불이 꺼지고 사람들이 하나둘 도시를 떠났다. 신전은 누군가에게 부서진 것이 아니라 정성스럽게 흙으로 덮였다. 누가 쳐들어와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도시를 묻고 조용히 사라진 것이다.

도시를 무너뜨린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었다

도시를 떠나게 만든 범인으로 지목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었다. 지질학자들은 이 지역의 오래된 지층을 파고들어 거대한 재난의 흔적을 읽어냈다. 강력한 엘니뇨가 바다를 덥히자 물고기 떼가 사라졌고, 뒤이어 폭우와 홍수가 계곡을 휩쓸었다.

그다음에는 거센 바람이 해안의 모래를 실어 와 밭을 덮어버렸다. 바다와 산을 잇던 거래의 그물망이 한쪽부터 끊어진 것이다. 먹을 것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더 나은 땅을 찾아 흩어졌다. 무기로도 무너지지 않던 도시가 기후 변화 앞에서는 끝내 버티지 못했다. 카랄의 몰락은 오늘날 기후 위기를 마주한 우리에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흥미로운 점은 카랄 사람들이 도시를 버리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신전을 파괴하거나 약탈하지 않았다. 오히려 건물을 돌과 흙으로 정성스럽게 덮은 뒤 떠났다. 이는 언젠가 다시 돌아오려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고, 도시를 신성한 상태로 봉인하려는 의례였을 수도 있다. 이 조용하고 질서 있는 퇴장은, 폭력으로 불타 사라진 다른 고대 도시들과 카랄을 다시 한번 뚜렷하게 구별 짓는다.

매듭에 담긴 기록, 안데스 문명의 뿌리

카랄이 남긴 물건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여러 색깔의 실에 매듭을 지어 정보를 기록한 도구, 바로 키푸였다. 훗날 잉카 제국이 거대한 나라를 다스릴 때 쓰던 바로 그 방식이 이미 5천 년 전 카랄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문자를 쓰지 않고도 셈과 기록을 매듭에 담았다. 무기도 문자도 없이 1천 년을 이어간 도시가 훗날 안데스 문명 전체의 뿌리가 되었다. 우리가 잉카라 부르는 거대한 세계의 첫 단추가 바로 이 마른 계곡에서 채워졌던 셈이다.

카랄에서 시작된 것은 키푸만이 아니었다. 계단식 피라미드를 중심에 두고 광장을 배치하는 도시 설계, 종교 의례를 통해 사회를 통합하는 방식, 해안과 내륙을 잇는 교역망 등 훗날 안데스 문명을 관통하는 여러 특징의 원형이 이 도시에서 이미 나타났다. 잉카 제국이 수천 킬로미터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기 수천 년 전에, 그 문명의 씨앗이 바로 이곳에서 조용히 싹텄던 것이다.

잊힌 도시를 세상에 꺼낸 사람

이 잊힌 도시를 세상에 다시 꺼내 놓은 사람은 페루의 고고학자 루스 샤디였다. 1990년대에 그녀가 처음 이 흙산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그녀는 토기 한 조각 없는 이 언덕이 아주 오래된 무언가라는 것을 직감했다.

연구비도 장비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녀는 수십 년을 이 계곡에 통째로 바쳤고, 유적을 지키려다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녀의 집념 덕분에 인류의 도시 역사는 1천 년 넘게 앞당겨졌다. 아메리카에서 문명이 처음 시작된 곳이 울창한 정글의 신전이 아니라 이 조용한 사막 강가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루스 샤디의 발굴은 단순히 오래된 유적 하나를 찾아낸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문명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시작되는가에 대한 우리의 오랜 상식을 뒤흔든 발견이었다. 오랫동안 학자들은 문명이 전쟁과 정복, 강력한 왕권 속에서 태어난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카랄은 그 반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협력과 교역, 그리고 공동의 믿음만으로도 거대한 도시가 세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날 카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인류가 걸어온 또 하나의 길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마치며 — 침묵이 남긴 질문

카랄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위대한 도시를 세우는 데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곳에는 정복자도, 거대한 군대도, 왕의 황금 무덤도 없었다. 대신 서로를 필요로 한 사람들과 광장에 울려 퍼진 음악이 있었다. 5천 년 전 사막의 강가에서 사람들은 두려움이 아니라 협력으로 도시를 움직였고, 자연이 등을 돌리자 싸우는 대신 조용히 도시를 덮고 떠났다. 카랄이 남긴 이 깊은 침묵은 지금도 우리에게 답을 기다리는 질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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