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이 도착하기도 전에 사라진 도시
미국 중서부, 미시시피강과 미주리강이 만나는 넓은 평원. 지금은 옥수수밭과 고속도로만 끝없이 이어지는 이 평범한 땅에, 한때 북미 대륙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도시가 우뚝 서 있었다. 전성기 인구는 약 2만 명. 여기에 주변 위성 마을까지 더하면 수만 명이 이 일대에 모여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시기 바다 건너 런던의 인구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였다. 놀랍게도 이 도시는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딛기도 훨씬 전에 이미 텅 비어 있었다. 도시를 삼킨 큰 전쟁의 흔적도, 사람들을 휩쓸어 간 역병의 자취도 뚜렷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흙을 쌓아 올린 거대한 산 120개뿐. 우리는 이 잃어버린 도시를 카호키아라고 부른다.
이름조차 잃어버린 도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카호키아라는 이름은 이 도시를 세운 사람들의 이름이 아니라는 점이다. 카호키아는 훨씬 나중에 이 근처에 살았던 전혀 다른 부족의 이름일 뿐이다. 정작 이 거대한 도시를 세우고 다스렸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무엇이라 불렀는지는 오늘날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들이 글자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들이 남긴 문화를 통틀어 미시시피 문화라고 부른다. 미시시피 문화는 옥수수 농사를 바탕으로 미국 남동부 전역에 걸쳐 크고 작은 흙산 도시들을 세웠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크고 강력했던 중심지가 바로 카호키아였다. 도시는 사라지고, 그 진짜 이름마저 함께 흙 속에 묻혔다.
대피라미드보다 넓은 흙산
도시의 심장에는 오늘날 몽크스 마운드라 불리는 거대한 흙산이 솟아 있었다. 높이는 약 30미터, 밑변의 넓이는 놀랍게도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미드보다도 넓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간이 만든 가장 큰 고대 구조물이다. 흙산은 여러 개의 평평한 단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도시를 다스리던 지배자의 커다란 목조 건물이 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 믿기 어려운 사실은 이 산이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사람의 손으로만 쌓였다는 점이다.
쇠로 만든 연장도, 짐을 실을 수레도, 무거운 것을 나를 짐승도 없었다. 사람들은 강가의 흙을 바구니에 담아 등에 지고 한 걸음씩 옮겼다. 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이 흙산 하나에 들어간 흙을 나른 바구니는 수천만 번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십 년에 걸쳐 여러 세대가 매달린 거대한 노동의 결정체였다. 흙의 종류를 세심하게 골라 층층이 다져 올린 덕분에, 이 거대한 흙산은 1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무너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해 왔다.
폭발하듯 태어난 도시
고고학자들이 흙산 아래를 파 들어가자 더욱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이 도시는 여러 세대에 걸쳐 서서히 자라난 것이 아니었다. 서기 1050년 무렵, 불과 한 세대 만에 작고 조용하던 마을이 수만 명이 북적이는 대도시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학자들은 이 극적인 현상을 카호키아의 빅뱅이라고 부른다. 이전까지 평원 곳곳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마치 거대한 자석에 이끌리듯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넓은 광장과 곧게 뻗은 길, 수백 채의 집이 순식간에 들어섰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이 평원으로 끌어모았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강력한 종교적 구심점,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 혹은 풍요로운 농경지와 두 강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라는 지리적 이점이 그 이유로 꼽힌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커다란 광장을 무대로 성대한 축제와 경기를 열었고, 도시는 순식간에 대륙의 문화 중심지로 떠올랐다.
피라미드에 견준 여행자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이 땅에 도착한 유럽계 이주민들은 평원 위에 솟은 흙산을 보고 넋을 잃었다. 1811년, 젊은 여행자 헨리 브래컨리지는 몽크스 마운드 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고는 이곳을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견줄 만한 위업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그의 순수한 감탄은 곧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당시 미국 사회에는 원주민이 이런 문명을 세웠을 리 없다는 편견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래컨리지의 기록은 오늘날 카호키아의 규모를 증언하는 귀중한 자료로 남았지만, 동시에 이 도시를 둘러싼 오랜 오해의 시작이기도 했다.
100년 동안 부정당한 진실
19세기 미국에는 기이한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 거대한 흙산을 세운 것이 원주민이 아니라, 오래전 사라진 백인 종족이나 먼 대륙에서 건너온 이방인이라는 것이었다. 이른바 사라진 흙산 종족 신화였다.
사람들은 그 상상 속 증거를 찾겠다며 흙산을 마구 파헤쳤다. 어떤 흙산은 밭을 만들려고 깎여 나갔고, 어떤 흙산은 철도와 도시를 건설하느라 통째로 헐렸다. 한때 수백 개에 이르던 이 일대의 흙산은 그렇게 상당수가 영영 자취를 감췄다. 진실은 단순했다. 이 위대한 도시를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이 땅의 원주민이었다. 그러나 그 당연한 사실이 정식으로 인정받기까지는 무려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더 걸렸다. 오늘날 이 이야기는 편견이 어떻게 명백한 진실마저 오랫동안 가릴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태양을 재던 나무의 원
카호키아 사람들의 지혜는 흙산에만 있지 않았다. 도시 한편에는 굵은 나무 기둥 수십 개를 커다랗게 둥글려 세운 구조물이 있었다. 학자들은 이것을 나무로 만든 스톤헨지라는 뜻에서 우드헨지라고 부른다.
그 지름은 넓게는 150미터에 달했다. 사람들은 이 원의 한가운데 서서 해마다 태양이 특정 기둥 위로 떠오르는 순간을 관찰했다. 그렇게 씨를 뿌릴 때와 곡식을 거둘 때, 그리고 중요한 의례의 날을 정확히 짚어 냈다. 글자 하나 없던 사람들이 오직 나무 기둥과 태양만으로 한 해의 흐름을 읽어 낸 것이다. 봄과 가을에 해가 특정 기둥과 정확히 겹쳐 떠오르는 순간은, 도시 전체가 함께 지켜보는 성스러운 사건이었을 것이다.
서서히 드리운 쇠퇴의 그림자
화려한 전성기를 지나자 도시에는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느 순간부터 도시 한복판을 둘러싸고 높고 긴 나무 방벽이 세워졌다. 수천 그루의 통나무로 두른 이 방벽은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는 신호였다.
도시를 먹여 살리던 주변의 숲은 땔감과 건축을 위해 빠르게 베여 나갔고, 헐벗은 땅 탓에 강물은 점점 더 자주 범람했다. 넘친 강물은 애써 가꾼 농경지를 덮쳤고, 늘어난 인구를 먹여 살리기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사람들은 하나둘 조용히 도시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서기 1200년을 넘기면서 한때 발 디딜 틈 없던 광장은 점점 조용해졌다.
텅 빈 도시가 남긴 침묵
그리고 마침내 서기 1350년 무렵, 카호키아는 완전히 텅 비었다. 도시를 집어삼킨 큰 전쟁의 흔적도, 사람들을 휩쓸어 간 전염병의 뚜렷한 자취도 발견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짐을 챙겨 하나씩 조용히 떠나 버린 것처럼 보였다. 이 평원에서는 멀리 멕시코만의 조개껍데기, 오대호의 구리, 먼 산맥의 광물까지 발견되었다. 카호키아가 북미 대륙 전역과 활발히 교류하던 거대한 중심지였다는 증거다.
그러나 이 모든 눈부신 영광은 채 300년을 넘기지 못하고 흙 속으로 사라졌다. 도시를 떠난 사람들은 여러 부족으로 흩어져 새로운 삶터를 일구었고, 오늘날 여러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이 그들의 후손으로 여겨진다.
흙을 읽는 사람들
오늘날의 학자들은 땅속에 남은 몇 안 되는 단서만으로 이 도시의 마지막을 되짚고 있다.
한 고고학자는 평생을 카호키아에 바쳐, 흙의 층과 기둥이 박혔던 자국, 부서진 그릇 조각을 하나하나 읽어 냈다. 그가 세운 가설은 이렇다. 오랜 가뭄과 지나친 벌목으로 땅이 지치고, 늘어난 사람들을 더는 먹여 살릴 수 없게 되자, 도시를 하나로 묶던 믿음마저 흔들렸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 역시 여러 가설 가운데 하나일 뿐, 진짜 이유는 여전히 흙 속에 잠겨 있다. 기후 변화, 정치적 갈등, 자원 고갈이 복합적으로 얽혔으리라는 시각이 오늘날에는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마치며 - 가장 조용히 사라진 문명
오늘도 미시시피강가에는 거대한 흙산들이 말없이 서 있다. 1982년 카호키아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 위에 오르면 발밑으로 700년 전 수만 명의 발자국이 잠들어 있다. 그들이 무엇을 믿었고, 왜 이 거대한 도시를 버리고 떠났는지 우리는 끝내 알지 못한다. 어쩌면 가장 거대한 문명일수록 가장 조용히 사라지는지도 모른다. 카호키아는 오늘도 그 마지막 답을 품은 채, 묵묵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