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삼킨 이집트 최대의 항구
고대 이집트로 들어가려는 배는 예외 없이 한 도시를 거쳐야 했다. 나일강이 지중해와 만나는 길목에 세워진 그 도시는, 이집트로 통하는 단 하나의 관문이었다. 이방인의 배는 이곳에서 세금을 물고 짐을 검사받은 뒤에야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거대하고 부유한 항구도시가 어느 순간 통째로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무려 1200년 동안, 사람들은 그런 도시가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았다. 이 글은 전설로만 남았던 한 도시가 어떻게 바다 밑에서 되살아났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이 도시의 이름은 하나가 아니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토니스라 불렀고, 그리스 사람들은 헤라클레이온이라 불렀다. 오랫동안 학자들은 이 둘을 서로 다른 두 도시라고 믿었지만, 훗날 바다 밑에서 밝혀진 진실은 전혀 달랐다.
이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도시가 사라진 방식과 되살아난 방식이 모두 극적이기 때문이다. 도시는 전쟁이나 화재가 아니라 자신이 딛고 선 땅 때문에 무너졌고, 그 뒤 1200년이 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졌다가, 단 한 사람의 집념으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틀란티스가 상상 속의 이야기라면, 토니스는 실제로 바다에 잠겼다가 되살아난 진짜 도시다.
이집트로 들어가는 단 하나의 문
토니스가 자리 잡은 곳은 지리적으로 완벽한 요충지였다. 나일강 어귀에 세워진 이 도시는, 지중해를 건너온 배들이 이집트 내륙으로 향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었다. 그 덕분에 도시는 막대한 부를 쌓았다. 세계 곳곳에서 온 상인과 뱃사람, 순례자가 뒤섞이며 도시는 늘 활기로 넘쳤다.

도시 한복판에는 거대한 신전이 서 있었다. 파라오들은 이곳에서 왕권을 공인받았고, 이 신전은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화려한 관문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치명적인 약점이 숨어 있었다. 그 약점은 다름 아닌 도시가 딛고 선 땅 그 자체였다.
뻘 속에 잠든 거대한 석상
이 도시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훗날 바닷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무너진 신전 기둥 사이에서는 높이가 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석상이 발견되었다. 나일강의 신을 새긴 이 붉은 화강암 조각은 뻘 속에 통째로 누운 채 잠들어 있었다. 도시가 가라앉은 자리에서는 70척이 넘는 고대 선박의 잔해가 확인되었고, 수백 개의 무거운 닻이 한곳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이 유물들은 이곳이 한때 얼마나 붐비던 항구였는지를 말없이 증언한다. 수백 척의 배가 동시에 드나들던 국제 무역의 심장이, 어느 순간 통째로 바다 밑에 봉인된 것이다.

특히 학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유물의 보존 상태였다. 지상에 남은 고대 유적은 대개 후대의 전쟁과 약탈, 재사용으로 크게 훼손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토니스의 유물들은 진흙과 바닷물이라는 뜻밖의 보호막 덕분에 2700년 전의 형태를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뻘은 산소를 차단해 나무와 금속이 썩는 속도를 극적으로 늦추었다. 덕분에 목재 선박의 골조나 섬세한 장신구처럼, 지상이었다면 진작 사라졌을 유물들이 원형에 가깝게 남을 수 있었다. 바다는 도시를 삼킨 도둑이자, 동시에 도시를 지킨 파수꾼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풍요롭던 도시는 어쩌다 바다 밑으로 끌려 들어갔을까.
진흙 위에 세운 도시의 운명
이 도시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다름 아닌 도시가 딛고 선 땅이었다. 토니스는 단단한 암반이 아니라, 나일강이 오랜 세월 실어 온 무른 진흙 위에 세워져 있었다. 평소에는 도시의 무게를 그럭저럭 버텨 주던 이 땅은, 결정적인 순간에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강한 지진이 도시를 덮치자, 물을 잔뜩 머금은 진흙은 순식간에 액체처럼 흐물흐물해졌다. 이것을 오늘날의 과학은 지반 액상화라고 부른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던 땅이 강한 진동을 받는 순간 지지력을 잃고 진흙탕처럼 변해 버리는 현상이다. 그 위에 서 있던 신전과 집과 석상은 지탱할 바닥을 잃고 그대로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거대한 도시가 마치 늪에 삼켜지듯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것이다.
한 가지 분명히 짚어 둘 점은, 도시의 침몰이 단 하루 만에 벌어진 하나의 사건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여러 차례의 지진과 해수면 상승, 지반 침하가 수백 년에 걸쳐 겹치면서 도시가 서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물속으로 내려앉았을 것으로 본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다. 그로부터 1000년이 넘도록 어떤 배도 그 아래에 도시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마침내 토니스는 아틀란티스처럼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는 전설이 되어 갔다.
전설이라는 낙인
오랜 세월 학자들은 이 도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고대 기록에는 분명 토니스와 헤라클레이온이라는 이름이 여러 번 등장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것을 뱃사람들이 지어낸 과장된 이야기쯤으로 여겼다. 한 연구자는 이 도시를 두고 아틀란티스처럼 상상이 만들어 낸 전설일 뿐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토니스와 헤라클레이온을 서로 다른 두 도시라고 굳게 믿었다. 하나의 도시가 두 개의 이름 때문에 마치 두 장소처럼 취급된 것이다. 그렇게 이 도시는 지도 위에서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완전히 지워져 갔다. 도시는 두 번 사라진 셈이었다. 한 번은 바다 밑으로, 또 한 번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어둠 속에서 떠오른 얼굴
그런데 단 한 사람은 이 전설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프랑스의 한 해저 고고학자는 사라진 도시가 이집트 앞바다 어딘가에 잠들어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의 탐사는 놀라울 만큼 집요했다. 그는 먼저 이집트 북부의 드넓은 만 전체를 조사 구역으로 정하고, 자기장의 미세한 변화를 읽는 장비로 바다 밑에 묻힌 거대한 구조물을 찾아 나갔다.

몇 해에 걸친 끈질긴 수색 끝에, 잠수부들은 숨을 멈추게 하는 광경과 마주했다. 한 잠수부는 훗날 그 순간을, 거대한 얼굴 하나가 어둠 속에서 자신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고 떠올렸다. 5미터짜리 석상의 머리가 진흙을 뚫고 그들 앞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전설이 진짜 역사로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이 발견이 가능했던 것은 첨단 장비와 오랜 인내가 만난 결과였다. 흙탕물처럼 뿌연 바닷속에서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기에, 탐사대는 눈이 아니라 자기장의 변화를 읽는 기계에 의존해 바다 밑을 더듬어야 했다. 거대한 석상과 신전은 주변의 진흙과 다른 자기 신호를 냈고, 그 미세한 차이가 사라진 도시의 위치를 알려 주는 단서가 되었다. 전설을 믿지 않은 한 사람의 확신이, 마침내 1200년의 침묵을 깨뜨린 것이다.
하나였던 두 도시
바다 밑에서 건져 올린 유물들은 오랜 수수께끼를 단숨에 풀어 주었다. 학자들이 서로 다른 두 도시라 믿었던 토니스와 헤라클레이온은, 사실 하나의 도시를 부르던 두 이름이었다. 이집트식 이름과 그리스식 이름이 세월 속에서 마치 다른 장소처럼 갈라져 있었던 것이다.

전설로만 치부되던 도시는 벽돌 하나까지 실재하는 진짜 역사였다. 상상이 지어낸 허구라던 곳에서 이름이 새겨진 유물과 신전과 배가 쏟아져 나왔다. 결국 틀린 것은 사라진 도시가 아니라, 그 도시를 전설로 밀어냈던 사람들의 확신이었다. 이 발견은 고대 기록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값진 교훈을 남겼다. 고대의 여행자와 역사가가 남긴 기록은 때로 과장이 섞여 있지만, 그 바탕에는 실제로 존재했던 장소와 사건이 깔려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토니스는 그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증명한 사례가 되었다.
2700년의 긴 시간표
이제 이 도시가 걸어온 긴 시간을 처음부터 따라가 보자.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 전, 토니스는 나일강 어귀에 세워져 빠르게 성장했다. 알렉산드리아라는 거대한 도시가 생기기 전까지, 이곳은 수백 년 동안 이집트 최대의 관문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새로운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가 떠오르면서 토니스의 활기는 조금씩 시들어 갔다. 여기에 거듭된 지진과 지반 침하가 이어지며 도시는 마침내 완전히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 뒤로 1200년이 넘는 긴 침묵이 흘렀고, 그동안 아무도 그 바다 아래를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마침내 한 탐사대가 그 오랜 침묵을 깨뜨렸다.
바다가 지켜 낸 역사
오늘날에도 잠수부들은 여전히 그 바다 밑을 탐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도시 전체의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진흙 아래에는 아직도 수많은 신전과 배와 조각상이 잠들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오랜 세월 이 발굴을 이끌어 온 한 고고학자는, 자신들이 신화를 건진 것이 아니라 잊혀졌던 진짜 역사를 되찾은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도시가 바다에 잠겼기 때문에 오히려 2700년 전의 모습이 손상 없이 통째로 보존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육지에 남았다면 후대의 개발과 약탈로 사라졌을 유물들이, 진흙과 바닷물 속에서 완벽하게 봉인된 것이다. 바다가 도시를 삼킨 그 순간이, 역설적으로 도시를 영원히 지켜 준 셈이다.
마치며
한 도시가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이집트로 들어가는 단 하나의 문이었던 이곳은 1200년 동안 전설로만 떠돌았다. 그러나 그 전설은 처음부터 전설이 아니라, 잠시 잊혔던 진짜 역사였다. 어쩌면 우리가 신화라고 부르는 이야기들 속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진실이 조용히 잠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지중해와 세계 곳곳의 바다 밑에서는 새로운 유적이 계속 발견되고 있으며, 토니스처럼 완전히 잊혔던 도시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드물지 않다. 우리가 아는 고대사는 어쩌면 실제로 존재했던 세계의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토니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또 어떤 진실을 전설이라 부르며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확신하는 지식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이, 언젠가 뒤집힐 또 다른 편견일까. 바다가 삼킨 그 도시는 오늘도 조용히 그 답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