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막 위 여섯 피라미드의 충격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북쪽으로 약 200킬로미터 떨어진 황량한 수페 계곡, 그곳에는 1994년까지 단지 “수상한 모양의 모래 언덕” 정도로 여겨지던 여섯 개의 거대한 구조물이 있었다. 한 여성 고고학자가 흙을 걷어내자, 그 모래 언덕은 실제 높이 약 30미터의 거대한 계단식 피라미드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이 만들어진 시기는 기원전 2700년경, 이집트 기자 대피라미드보다도 100년 이상 앞선, 신대륙 인류 역사상 최초의 도시였다. 그 도시의 이름은 카랄이었다.

2. 신대륙 최초의 도시, 카랄
카랄의 규모는 약 65헥타르, 약 80개의 축구장을 합한 넓이이다. 거주 인구는 약 3000명에서 5000명 사이로 추정된다. 도시 한가운데에는 “마요르 피라미드”라 불리는 가장 큰 계단식 신전이 있는데, 그 부피만 해도 약 16만 세제곱미터에 이른다. 6기의 거대 피라미드와 다수의 둥근 광장, 그리고 농경지가 정연한 격자형으로 배치된 도시 구조는 명백히 “기획된 도시”의 모습을 보였다. 같은 시대의 메소포타미아 우르 도시국가, 이집트 초기 왕조, 인도 인더스 문명, 중국 황하 문명과 함께 카랄은 세계 5대 “원시 문명 발상지”의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다.
3. 루스 솔리스의 1994년
이 도시의 비밀을 풀어낸 사람은 페루 산마르코스 대학의 여성 고고학자 루스 솔리스였다. 그녀는 1979년부터 수페 계곡의 모래 언덕에 관심을 가졌고, 박사 학위 연구 주제로 이 지역을 선택했다. 1994년, 그녀는 비로소 정식 발굴 허가를 받았고, 직접 흙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계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녀가 발견한 도시가 토기를 단 한 점도 사용하지 않은 “무토기 사회”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도시의 연대를 훨씬 후대로 추정하고 있었다. 솔리스는 자신의 결론을 증명하기 위해 단 한 가지 결정적 방법,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모든 것을 걸었다.

4. 갈대 자루가 바꾼 연대
2000년 솔리스 팀은 마요르 피라미드의 내부에서 사초쿠리라 부르는 갈대로 짠 자루의 잔재를 발견했다. 이 갈대 자루는 피라미드의 돌 사이를 채우는 충전재 역할을 한 것으로 보였다. 솔리스는 그 갈대 자루 표본 16개를 미국 노스일리노이 대학의 조너선 하스 박사와 함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보냈다. 결과는 학계를 뒤집어 놓을 만한 것이었다. 갈대 자루의 연대는 기원전 2627년에서 기원전 2020년 사이로 측정되었다. 그동안 신대륙 문명의 출발점으로 알려져 왔던 어떤 도시보다도 약 1000년 이상 앞선 시기였다. 2001년 솔리스와 하스는 그 결과를 권위 있는 학술지 “사이언스”에 공동 발표했다.

5. 32점의 갈대 피리
카랄의 또 다른 특이한 발견은 음악과 관련된 유물이었다. 2003년 솔리스 팀은 한 광장의 모래 아래에서 펠리컨과 콘도르의 뼈로 만든 32점의 피리를 한꺼번에 발견했다. 이 피리들은 일정한 음계로 조율되어 있었으며, 현대의 음악학자들이 직접 연주해 본 결과 분명한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카랄 사람들은 이미 4700년 전에 집단 음악, 즉 합주를 즐겼다는 뜻이었다. 또 다른 광장에서는 사슴과 라마의 뼈로 만든 38점의 코르넷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무기는 단 한 점도 없는 도시에서 70여 점의 악기가 한꺼번에 묻혀 있었다는 사실은 학자들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남겼다.

6. 무기가 없는 1000년
카랄에서 학자들을 가장 놀라게 한 사실은 약 1000년에 걸친 도시의 지속 기간 동안 단 한 점의 무기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발굴된 유물 중에는 활도, 창의 촉도, 전투용 곤봉도, 돌도끼도 없었다. 도시의 성벽이나 방어 시설의 흔적도 전무했다. 같은 시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인더스 문명의 도시들이 모두 두꺼운 성벽과 다량의 무기를 남긴 것과는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학자들은 카랄이 “평화 무역 도시”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도시의 위치가 해안의 어업 지역과 내륙의 농업 지역을 잇는 교차점에 있었고, 발굴된 인구의 식단에서 면화를 매개로 한 무역의 흔적이 강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카랄 사람들이 생산한 면사는 해안 어부들에게 그물로 제공되었고, 어부들은 답례로 해산물을 카랄에 보냈다.

7. 키푸의 가장 오래된 흔적
솔리스 팀이 2005년에 발표한 또 하나의 발견은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카랄 도시의 한 구덩이에서 발견된 면사 매듭 묶음이 잉카 문명의 “키푸”와 거의 같은 구조였다는 사실이었다. 키푸는 잉카인들이 숫자와 정보를 매듭으로 기록한 일종의 “3차원 문자 체계”이다. 매듭의 모양, 위치, 색깔, 거리에 따라 정보가 부호화되며, 잉카 제국은 이를 통해 인구 통계와 세금 기록을 관리했다. 그동안 키푸는 잉카 시대인 약 13세기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카랄에서 발견된 매듭 묶음의 연대는 약 4600년 전으로 측정되었고, 이는 잉카의 키푸보다 약 33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카랄 사람들은 이미 4600년 전에 “기록 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8. 도시가 사라진 이유
카랄과 수페 계곡의 자매 도시들은 약 1000년간 번영한 후, 기원전 1800년경 갑작스럽게 비워졌다. 학자들은 그 원인을 두고 여러 가설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기후 변화 가설이다. 안데스 산맥의 화산재 분석과 페루 해안의 산호 분석은 그 시기 강력한 엘니뇨 현상으로 인한 거대한 홍수와 토양 황폐화를 보여 준다. 두 번째는 농업 토양의 고갈 가설이다. 면화 단작에 의존하던 카랄의 농업이 토양의 영양분을 소진했다는 분석이다. 세 번째는 무역 네트워크의 붕괴 가설이다. 해안의 멸치 어업이 엘니뇨로 무너지면서 카랄의 면사 수출 경제가 함께 무너졌다는 것이다. 어떤 원인이었든, 카랄 사람들은 평화롭게 도시를 떠난 것으로 보인다. 발굴된 모든 신전에는 의례적인 “매장” 행위의 흔적이 있고, 폭력적 파괴의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9. 신전을 묻은 의례, 마지막 작별
카랄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는 모습은 다른 어떤 고대 문명에서도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들은 모든 거대 신전의 내부와 계단을 정성스럽게 흙으로 채워 “의례적으로” 매장했다. 이는 마치 신전을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 그러나 동시에 영원히 보존되도록 봉인하는 행위로 보였다. 발굴 과정에서 솔리스 팀은 매장의 층위가 매우 정연하게 쌓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한순간의 도주가 아니라 의도적이고 시간을 들인 작별이었음을 의미한다. 어떤 학자들은 이를 “문명이 스스로 자신을 잠재운 사례”라고 표현했다.

10. 18개 자매 도시의 발견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솔리스 팀은 위성 영상 분석과 항공 측량을 통해 수페 계곡 일대에서 카랄과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자매 도시 17개의 흔적을 추가로 발견했다. 그중 일부는 카랄보다 더 큰 규모를 가졌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가장 가까운 자매 도시는 카랄에서 약 18킬로미터 떨어진 아스페로로, 이곳은 해안에 위치한 어업 중심지였다. 두 도시는 면사와 해산물의 무역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가까운 자매 도시들은 모두 수페 계곡을 따라 약 20킬로미터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학자들은 이 18개 도시 네트워크가 신대륙 최초의 “도시 연합체”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그중 본격적으로 발굴된 곳은 카랄과 아스페로 단 두 곳뿐이다.

11. 오늘까지 95퍼센트가 모래 속에
카랄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러나 도시 전체의 발굴 비율은 여전히 약 5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머지 95퍼센트는 여전히 모래 아래에 잠겨 있다. 솔리스 박사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신대륙 최초 문명의 단 한 페이지를 겨우 펼쳤을 뿐입니다. 책의 나머지는 여전히 모래 속에 묻혀 있습니다.” 발굴 자금의 부족, 페루의 정치적 불안정, 사막 환경의 극심한 보존 문제가 발굴 속도를 늦추고 있다. 그러나 한 해 한 해 새로운 신전과 광장과 유물이 사막 아래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4700년의 침묵은 여전히 일부만 깨어났다.

12. 가장 오래된 문명이 가장 평화로웠다는 사실
카랄의 가장 큰 가르침은 시간순이 아닌 가치순에 있다. 우리는 흔히 “가장 오래된 문명”이라고 하면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야만적인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카랄은 가장 오래된 문명이면서 동시에 가장 평화로운 문명이었다. 무기를 만들지 않았고, 성벽을 쌓지 않았으며, 음악을 즐겼고, 면화를 매개로 무역을 했다. 그들은 도시를 떠날 때조차 폭력 없이 의례적으로 떠났다. 같은 시기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들이 사르곤 대왕의 정복 전쟁으로 무너지고, 이집트 초기 왕조가 권력 투쟁으로 흔들리던 시대에, 페루의 한 사막에서는 1000년의 평화가 조용히 지속되고 있었다. 이것이 단지 우연이었는지, 혹은 어떤 사회적 합의의 결과였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13. 마치며: 무기 없는 1000년이 남긴 질문
기원전 2700년의 어느 날, 페루의 한 사막 계곡에서 사람들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토기 대신 면사 매듭으로 기록을 남겼고, 무기 대신 갈대 피리로 합주를 즐겼다. 그렇게 1000년의 시간이 흘러간 후 그들은 폭력 없이 평화롭게 도시를 떠났다. 우리는 그들이 어떤 신을 믿었는지, 어떤 언어를 썼는지, 왜 단 한 점의 무기도 만들지 않았는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가장 오래된 문명이라고 해서 가장 야만적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가 “문명의 진보”라고 부르는 것의 일부는, 사실 그 반대 방향으로 흘러간 한 잘못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카랄의 사막 아래에는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95퍼센트가 잠들어 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는 어쩌면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한 가지 질문이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