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글 천장을 뚫고 솟은 다섯 첨탑
1860년 1월의 어느 아침, 한 명의 프랑스 박물학자가 캄보디아 북서부의 짙은 정글을 헤치며 천천히 나아갔다. 그가 막 풀숲을 헤치고 작은 공터에 나서는 순간, 머리 위 거대한 그림자가 그를 멈춰 세웠다. 정글의 천장을 뚫고 솟아오른 다섯 개의 거대한 돌탑이었다. 그것은 한 변 약 5킬로미터의 정사각형 해자로 둘러싸인 인류 최대 규모의 종교 건축물 앙코르 와트, 12세기 크메르 제국이 남긴 도시이자 사원이었다. 그가 본 그 순간 이전까지, 서구 세계는 약 400년 동안 이 도시의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다.

2. 크메르 제국의 600년 황금기
앙코르 와트를 세운 크메르 제국은 9세기 초 자야바르만 2세가 앙코르 지역에 수도를 정한 뒤 약 600년간 동남아시아의 패권을 잡았던 거대한 왕국이었다. 전성기였던 12세기 초, 크메르 제국의 영토는 지금의 캄보디아 전역과 태국 중부, 라오스 남부, 베트남 남부까지 뻗어 있었다. 수도 앙코르의 인구는 약 75만 명에서 100만 명 사이로 추정되며, 같은 시대의 런던 인구가 약 1만 8000명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이 시기 앙코르는 단순한 정치 수도가 아니라 동남아시아 종교와 예술의 중심이었다. 거대한 저수지와 운하망, 정교한 관개 시스템, 도시 격자형 주택 구획까지 모두 12세기에 완성된 모습이었다.
3. 수르야바르만 2세와 37년의 건설
앙코르 와트는 1113년에 즉위한 수르야바르만 2세가 본격적으로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사후 안식처이자 비슈누 신의 지상 거주지로 이 사원을 구상했고, 약 37년에 걸쳐 1150년 무렵 거의 완공되었다. 건설에는 약 30만 명의 노동력과 6000마리의 코끼리가 동원되었다고 추정된다. 사원에 사용된 사암 블록은 약 500만 개, 무게로는 약 1000만 톤에 달했다. 이 사암 블록의 대부분은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쿨렌 산에서 채취되어 운하를 통해 이곳까지 옮겨졌다. 21세기 항공 라이다 측량은 그 운하의 흔적을 정글 아래에서 그대로 발견했다.

4. 1431년의 갑작스러운 포기
이 거대한 도시가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대해 학자들은 오랫동안 단 하나의 사건만을 원인으로 지목해 왔다. 1431년 태국 중부의 신흥 강국 아유타야 왕국이 앙코르를 침공해 약 7개월간 포위한 끝에 함락시킨 사건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위성 영상과 기후학 연구가 더해지면서, 학자들은 더 복합적인 원인을 발견했다. 14세기 말부터 약 60년간 동남아시아를 강타한 거대한 가뭄과 그 사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홍수의 반복이 앙코르의 정교한 수로망을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결국 크메르 왕실은 앙코르를 포기하고 남쪽으로 약 320킬로미터 떨어진 프놈펜으로 천도했다. 한때 100만 명에 가까웠던 거대 도시는 정글의 손에 맡겨졌다.
5. 정글에 묻힌 400년의 시간
왕실이 떠난 후에도 앙코르 와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일부 불교 승려들이 남아 사원의 중앙 부분을 명상 공간으로 사용했고, 16세기에는 일본 무역상 모리모토 카즈우후사가 이곳을 방문해 정밀한 평면도를 그려 일본으로 가져갔다. 17세기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선교사 몇 명이 짧은 기록을 남겼지만, 그들의 글은 유럽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사이 정글은 매년 조금씩 자라났다. 거대한 무화과 나무의 뿌리가 사원의 돌담 사이로 파고들어 일부 건물을 산산조각 냈고, 다른 일부는 오히려 뿌리가 떠받쳐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기묘한 균형을 만들어냈다.

6. 앙리 무오라는 박물학자
앙리 무오는 1826년 프랑스 동부의 몽벨리아르에서 태어난 박물학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곤충, 특히 딱정벌레의 분류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영국 왕립 지리학회의 후원을 받아 1858년부터 동남아시아 탐험을 시작했다. 그의 공식 임무는 새로운 곤충과 식물 표본을 수집해 영국 박물관에 보내는 일이었다. 그는 시암 만을 거쳐 캄보디아 내륙으로 들어왔고, 1860년 1월 어느 날 톤레삽 호수 북쪽의 정글 한가운데서 한 명의 캄보디아 안내인을 만났다. 그 안내인은 무오에게 “신들이 만든 사원”이라 부르는 거대한 돌탑이 정글 안에 있다고 알려 주었다. 무오는 본래의 곤충 채집 임무를 잠시 미루고 그 사원을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7. 미켈란젤로보다 위대하다고 적은 한 페이지
무오는 자신의 일기에 그날의 첫인상을 매우 자세하게 적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이 사원의 단 하나의 돌조차 미켈란젤로의 가장 위대한 작품에 비길 만하다. 솔로몬 성전보다 위대하고, 고대 그리스나 로마가 우리에게 남긴 모든 것보다 더 장엄하다.” 그는 약 3주간 사원 단지에 머무르며 평면도를 직접 그렸고, 부조와 조각의 세부 묘사, 그리고 자신이 느낀 감정을 빼곡히 기록했다. 그러나 무오는 단 한 가지 사실을 잘못 추측했다. 그는 이 사원이 너무도 정교해 “고대 로마인 또는 알렉산드로스의 후예가 세운 것”이라고 적었다. 19세기 유럽인의 편견 속에서 그는 캄보디아인이 이 사원을 직접 만들었다고 인정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8. 200헥타르의 도시 사원
앙코르 와트의 진정한 규모는 무오의 시대에는 완전히 파악되지 못했다. 사원의 중심부 면적만 약 200헥타르로, 이는 약 280개의 축구장을 합한 넓이이다. 한 변 약 5킬로미터의 정사각형 해자가 전체를 둘러싸고 있고, 해자의 폭은 약 190미터에 이른다. 사원 단지 내부에는 약 600미터 길이의 회랑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으며, 그 회랑의 벽면에는 인도 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의 장면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부조의 총 길이를 합하면 약 1.2킬로미터에 이르며, 약 2만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 정교함과 양 모두에서 세계 어느 사원에도 견줄 수 없는 규모이다.

9. 35세의 죽음과 사후 출판된 일기
무오는 캄보디아 탐험을 마친 후 라오스 북부의 정글을 계속 탐험하던 중, 1861년 11월 루앙프라방 인근에서 갑작스러운 말라리아 열병으로 쓰러졌다. 그는 단 며칠 만에 사망했고, 그때 그의 나이는 단 35세였다. 그의 마지막 일기 한 줄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신이여, 자비를.” 그가 남긴 일기와 그림은 영국으로 돌려보내져, 1863년 런던에서 “인도차이나 왕국 여행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1866년 프랑스는 캄보디아에 정식 학술 조사단을 파견했다. 그 후 약 100년에 걸친 발굴과 복원 작업이 이어졌고, 1992년 앙코르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0. 무화과 뿌리와 사원의 기묘한 균형
앙코르 단지의 또 다른 사원 타 프롬은 무오 시대 이후에도 의도적으로 정글 속에 그대로 남겨졌다. 거대한 무화과 나무와 면사 무명 나무의 뿌리가 사원의 돌담을 휘감고 있는 모습은 “자연이 인공을 다시 삼키는” 가장 극적인 풍경으로 알려졌다. 1992년 영화 “툼 레이더”의 촬영지로도 유명해진 이 사원은 매년 수많은 방문객을 끌어모은다. 흥미로운 점은 일부 뿌리가 사원을 무너뜨리기보다 오히려 떠받쳐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은 뿌리를 한꺼번에 제거하면 오히려 건물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사라진 그 모습은 잃어버린 문명의 가장 시적인 잔재이다.

11. 라이다가 다시 그린 도시
21세기에 들어 앙코르 연구는 새로운 도구와 함께 다시 시작되었다. 2012년과 2015년, 호주 시드니 대학의 데미언 에반스 박사 팀은 헬리콥터에 장착한 라이다 레이저 측량 장비로 앙코르 일대를 정밀하게 스캔했다. 그 결과 사원 주변 약 90제곱킬로미터의 정글 아래에서 거대한 도시 격자, 인공 수로망, 그리고 약 1000개의 작은 사원 흔적이 새로 드러났다. 그곳에는 직선 도로, 격자형 주택 구획, 거대한 저수지 4개, 그리고 약 1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운하의 흔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학자들은 12세기 앙코르 도시의 실제 면적이 현대 뉴욕시의 5배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무오가 본 사원 단지는 거대한 도시의 단 하나의 중심 건축물에 불과했던 셈이다.

12. 한 박물학자의 호기심이 깨운 도시
앙코르 와트의 재발견은 단지 한 사람의 우연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호기심이 없었다면, 이 도시는 어쩌면 100년쯤 더 정글 속에 묻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무오의 일기 한 권이 유럽 학계의 관심을 끌어모았고, 그 관심이 학술 조사단을 보냈고, 그 조사단이 약 100년에 걸친 발굴 작업을 시작하게 했다. 21세기의 라이다 항공 측량까지 이 모든 흐름의 출발점은 1860년 1월 어느 정글 한가운데서 한 박물학자가 가졌던 그 순간의 경외감이었다. 그는 단지 새로운 곤충을 찾던 한 명의 자연주의자였지만, 결국 그가 발견한 것은 한 시대 전체였다.

13. 마치며: 정글이 다시 자라는 동안
1860년 1월 어느 아침, 한 명의 박물학자가 정글 한가운데서 마주친 거대한 다섯 첨탑은 단지 사라진 사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때 인류 최대의 도시였던 곳이 정글의 침묵 속으로 어떻게 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증거였다. 무오의 일기 한 권이 그 침묵을 다시 깨운 후 16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도시의 모든 비밀을 알지 못한다. 정글은 매년 다시 자라고, 라이다는 매년 새로운 도시의 흔적을 찾아낸다. 어떤 도시는 사람이 떠나면 곧 사라지고, 어떤 도시는 떠난 후 오히려 더 거대한 신화가 된다. 앙코르 와트는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그 신화의 첫 페이지는 35세에 라오스 정글에서 쓸쓸하게 죽은 한 프랑스 청년의 일기장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