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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마돌의 미스터리: 92개 인공섬과 75만 톤 현무암, 아무도 모르는 방법

난마돌의 미스터리: 92개 인공섬과 75만 톤 현무암, 아무도 모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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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한복판에 버려진 도시

태평양의 외딴 섬 폰페이 동쪽 해안, 얕은 산호초 위에 92개의 인공섬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도시가 완성된 채로 버려져 있다. 이름은 난마돌이다. 이 도시를 이루는 것은 검은 현무암 기둥이다. 하나의 무게가 5톤에서 무겁게는 50톤에 이르고, 전체를 합치면 무려 75만 톤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단순하다. 누가, 어떻게 이 돌을 옮겨 이 자리에 쌓았는지 지금까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채석장은 섬 반대편 수십 킬로미터 밖에 있었고, 당시 이 섬에는 바퀴도, 무거운 짐을 끄는 큰 짐승도, 쇠로 만든 연장도 없었다. 그런데도 도시는 정교하게 완성되어 있었고, 어느 순간 사람만 감쪽같이 사라졌다. 오늘날 이곳을 찾는 이들은 밀림 속에 우뚝 선 검은 성벽 앞에서 하나같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난마돌은 지어진 방법도, 버려진 이유도 모두 미해결로 남은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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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마돌, 사이의 공간이라는 이름

난마돌이라는 이름은 현지어로 사이의 공간을 뜻한다. 이는 인공섬과 인공섬 사이를 가르는 좁은 운하를 가리키는 말이다. 92개의 섬은 마치 바둑판처럼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를 물길이 촘촘하게 연결한다. 섬과 섬 사이를 오가려면 반드시 배를 타야 했다. 밀물이 들어오면 도시 전체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난마돌을 태평양의 베네치아라고 부른다. 물길 위로는 검은 현무암 기둥이 마치 통나무를 쌓듯 가로세로로 엇갈려 성벽을 이룬다. 어떤 벽은 높이가 8미터에 달하고, 두께 또한 상당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구조물이 접착제나 시멘트 없이 오직 돌 자체의 무게와 균형만으로 수백 년을 버텨왔다는 사실이다. 열대의 밀림과 검은 돌, 그리고 잔잔한 바닷물이 만들어낸 이 풍경은 보는 이에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인상을 남긴다.

사우델레우르 왕조와 두 마법사

난마돌을 세우고 다스린 이들은 사우델레우르 왕조로 알려져 있다. 폰페이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은 이 도시의 기원을 신비롭게 설명한다. 올리시파와 올로소파라는 두 마법사 형제가 하늘을 나는 용의 힘을 빌려 거대한 현무암을 옮겼다는 것이다. 두 형제는 신을 모실 제단을 지을 자리를 찾아 폰페이 곳곳을 헤맸고, 마침내 이 산호초 위에 첫 돌을 놓았다고 전해진다. 그 뒤 사우델레우르 왕들은 수백 년에 걸쳐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그들은 섬 전역의 백성을 난마돌로 불러들여 조공을 바치게 했고, 자신들은 신에 가까운 존재로 군림했다. 왕의 허락 없이는 큰 소리로 말하는 것조차 금지되었을 만큼 통치는 엄격했다. 도시의 중심에는 왕들의 무덤이 자리했으며, 높은 벽이 산 자의 공간과 죽은 자의 공간을 분명하게 갈라놓았다. 이 도시는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정치와 종교, 그리고 죽음의 의례가 한데 얽힌 신성한 중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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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망의 연표를 따라가다

난마돌의 역사는 대략 900년 전, 110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산호초 위에 돌을 쌓아 첫 인공섬을 만들기 시작했다. 1200년 무렵 사우델레우르 왕조는 전성기를 맞이했고, 난마돌은 폰페이 전체를 지배하는 정치와 종교의 심장이 되었다. 그러나 절대 권력은 영원하지 않았다. 1628년 무렵, 이소켈레켈이라는 전사가 나타나 왕조를 무너뜨렸다고 전해진다. 그는 사우델레우르의 오랜 폭정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인물로 기억된다. 새로운 지배자는 한동안 난마돌에 머물렀지만, 오래지 않아 이 도시는 서서히 텅 비어가기 시작했다. 1800년 무렵에 이르면 사람이 완전히 떠나 도시는 폐허가 된다. 훗날 서양 탐험가들이 이곳을 찾아왔을 때, 그들이 마주한 것은 밀림에 잠긴 채 말없이 서 있는 검은 성벽뿐이었다. 화려했던 왕국의 흔적은 오직 돌 속에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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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만 톤이라는 미스터리

고고학자들이 난마돌을 실제로 측정하기 시작하자, 그 규모는 상상을 훌쩍 넘어섰다. 도시를 이루는 현무암 기둥은 하나하나가 5톤에서 무겁게는 50톤에 달했다. 이런 기둥이 수만 개에 이르고, 전체 무게를 합치면 약 75만 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온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무게 그 자체가 아니었다. 이 돌들의 고향이 난마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현무암을 캐낸 채석장은 섬의 반대편,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배도, 기중기도, 쇠로 만든 연장도 없던 시대에 이 엄청난 무게를 어떻게 그 먼 거리를 가로질러 옮겼는지, 현대의 계산으로도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떤 학자들은 밀물과 뗏목을 이용했으리라 추정하지만, 이는 이론일 뿐 실제로 검증된 적은 없다. 난마돌의 돌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풀리지 않는 질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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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옮긴 방법에 관한 가설들

학자들은 오랜 세월 이 돌을 옮긴 방법을 놓고 씨름해 왔다. 가장 널리 알려진 가설은 밀물을 이용한 뗏목 운반설이다. 물이 차오를 때 통나무 뗏목에 기둥을 싣고 바다에 띄워 날랐으리라는 것이다. 여기에 흙과 통나무로 비탈을 쌓아 돌을 끌어올렸다는 경사로설이 더해진다. 또한 수천 명의 인력이 밧줄을 잡고 한꺼번에 당겼으리라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가설에는 공통된 약점이 있다. 어느 것도 75만 톤이라는 전체 규모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 연구팀이 작은 기둥 하나만이라도 당시의 방식대로 옮겨보려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과학이 답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현지인들은 여전히 오래된 전설을 믿는다. 두 마법사가 하늘을 나는 용을 불러 돌을 스스로 날게 했다는 이야기다. 합리적 설명이 벽에 부딪힐 때, 신화는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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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를 뛰어넘는 규모

난마돌의 무게가 얼마나 압도적인지는 다른 유적과 비교할 때 비로소 실감이 난다. 흔히 거석 문명의 대표로 꼽히는 영국의 스톤헨지는, 사용된 돌을 모두 합쳐도 약 3만 톤 정도로 추정된다. 그런데 난마돌은 그보다 20배가 넘는 75만 톤을 옮겨 쌓았다. 스톤헨지조차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두고 지금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을 떠올리면, 난마돌의 성취는 더욱 아득하게 느껴진다. 유럽 대륙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를 두고 이루어진 스톤헨지와 달리, 난마돌은 대양 한복판의 외딴 섬에서, 변변한 도구조차 없던 사람들의 손으로 완성되었다. 게다가 이들은 문자도, 설계도도,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눈앞에 실재하는 검은 돌의 도시뿐이다. 그 침묵이 미스터리를 한층 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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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금기

난마돌을 지켜온 폰페이 사람들에게 이 도시는 함부로 발을 들이거나 입에 올릴 곳이 아니다. 이곳에는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오래된 금기가 존재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금기는, 밤에 난마돌에 들어간 사람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원로는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이 돌들은 사람이 옮긴 것이 아니라고 조상들이 말했다고 전했다. 그것은 단순한 겁주기가 아니라 세대를 거쳐 진지하게 전승된 믿음이다. 실제로 이 금기를 가볍게 여기고 밤에 유적에 머물렀던 몇몇 방문자가 갑작스럽게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섬에 남아 있다. 진위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반복되며 난마돌은 신성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장소로 자리 잡았다. 폐허가 된 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이 도시는 살아 있는 금기로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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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에 관한 증언들

난마돌의 저주를 둘러싼 이야기는 하나둘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자주 회자되는 것은 20세기 초, 이 유적을 학술적으로 조사하려던 한 서양 학자의 일화다. 그는 현지인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밤에도 도시에 남아 성벽을 살피고 무덤을 파헤쳤다. 한 안내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해가 지면 이곳을 반드시 떠나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돌아올 수 없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자는 그 경고를 미신으로 치부하며 웃어넘겼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는 자신의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죽음의 원인은 끝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반복되자, 사람들은 난마돌을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를 우연이나 과장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합리로 설명되지 않는 유적 앞에서, 사람들의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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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없는 숫자들

난마돌이 우리에게 남긴 숫자들은 하나같이 답이 없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92개의 인공섬, 75만 톤에 이르는 검은 돌, 그리고 사람이 떠난 뒤 400년 가까이 이어진 침묵이다. 이 도시가 정확히 언제 완성되었는지, 왜 하필 육지가 아닌 위태로운 바다 위 산호초를 택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 어마어마한 무게를 옮긴 방법에 대해, 지금까지 확실하게 검증된 답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우델레우르 왕조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뒤, 도시는 저항할 힘을 잃고 서서히 밀림에 삼켜졌다. 검은 성벽 사이로 나무뿌리가 파고들었고, 운하에는 침묵만이 고였다. 화려했던 왕국이 남긴 것은 결국 웅장한 폐허와, 그 폐허가 던지는 끝없는 질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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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미해결 미스터리

난마돌은 결국 두 개의 커다란 수수께끼를 품은 채 오늘도 태평양의 파도에 씻기고 있다. 첫 번째는 어떻게 75만 톤의 거대한 현무암을 먼 채석장에서 이 산호초 위까지 옮겼는가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렇게 힘겹게 완성한 도시를 왜 어느 순간 통째로 버렸는가 하는 것이다. 학자들은 오늘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폰페이의 현지인들은 여전히 밤이 되면 그곳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 도시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답을 내어줄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탐험가와 학자가 이곳을 찾았지만, 검은 성벽은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난마돌은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지어진 방법과 버려진 이유를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다. 인류가 남긴 가장 거대한 침묵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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