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에 빵이 있었다
발굴자들이 2,000년 된 폼페이 빵집의 문을 열었을 때, 화덕에는 탄화된 빵 81개가 그대로 있었다. 식탁에는 음식이 차려진 채였고, 벽에는 낙서가 선명했다. 시간이 멈춰 있었다. 기원후 79년 8월 24일, 바로 그 날에.
폼페이는 단순한 역사 유적이 아니다. 2,000년 전 로마인들이 살았던 하루가 통째로 담긴 타임캡슐이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한 지 18시간 만에 도시는 화산재 6미터 아래로 사라졌고, 1,700년이 흐른 뒤 거의 완벽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기원후 79년 8월 24일, 마지막 아침
기원후 79년의 폼페이는 인구 약 2만 명이 거주하는 번영한 항구 도시였다. 나폴리만을 내려다보는 좋은 위치 덕분에 로마 제국 전역에서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시장에는 올리브오일과 생선젓갈이 거래되었고, 원형 경기장에서는 검투사 경기가 열렸으며, 공중 목욕탕은 시민들의 사교 공간이었다.
그 날 아침도 도시는 평범하게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빵집에서 갓 구운 빵을 샀을 것이고, 세탁소에는 옷을 맡긴 손님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배경으로 보이는 베수비오 산이 그날 오후 폭발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 산이 화산이라는 사실조차 당시 로마인들은 알지 못했다.

18시간의 재난 — 단계별 진행
오후 1시경, 베수비오에서 거대한 폭발이 시작되었다. 화산재와 가스 기둥이 높이 30킬로미터까지 솟아올랐다. 이 폭발은 히로시마 원자폭탄보다 약 100배 강한 에너지를 방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첫 몇 시간 동안은 가벼운 부석이 비처럼 내렸다. 이 시간 동안 상당수의 시민들이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는 집에 머물렀다. 곧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거나, 노인이나 아이들을 데리고 이동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자정이 넘어서부터 상황이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화쇄류(pyroclastic flow)라고 불리는 뜨거운 화산가스와 암석 혼합물이 시속 700킬로미터의 속도로 산을 내려왔다. 섭씨 300도에 달하는 이 흐름 앞에서는 어떤 생존도 불가능했다.

역사상 최초의 화산 기록 — 소 플리니우스
폼페이 재난은 인류 역사상 가장 상세하게 기록된 화산 폭발이기도 하다. 당시 17살이었던 소 플리니우스(Pliny the Younger)는 인근 미세눔에서 이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훗날 상세한 편지로 기록을 남겼다.
그는 화산 연기의 형태를 지중해 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에 비유했다. 이 비유는 현대 화산학자들이 플리니식 분화(Plinian eruption)라고 부르는 특정 유형의 화산 폭발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 소 플리니우스의 기록 덕분에 우리는 그 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시간대별로 재구성할 수 있다.

1748년 — 1,700년 만의 귀환
폼페이는 1748년 나폴리 왕국의 카를로 7세(나중의 스페인 카를로스 3세)의 명령으로 체계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다. 사실 그 이전인 1599년에도 굴착 작업 중 벽화가 발견된 적 있었으나, 당시에는 그것이 폼페이임을 알아보지 못했다.
1748년 발굴자들이 화산재를 걷어내기 시작하자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 건물 구조가 온전했다.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의 색이 생생했다. 가게에는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1,700년이라는 시간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보존 상태였다.

석고 캐스트 — 마지막 순간의 재현
폼페이 발굴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방법론은 1863년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Giuseppe Fiorelli)가 개발한 석고 캐스트 기법이다. 발굴 과정에서 화산재 속에서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빈 공간이 발견되었다. 유기물은 분해되고 그 형태만 공동(空洞)으로 남은 것이었다.
피오렐리는 이 공동에 액체 석고를 부어 넣었다. 석고가 굳자 1,800년 전 그 마지막 순간의 자세가 그대로 재현되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사람, 아이를 꼭 안은 어머니, 식탁 아래에 웅크린 가족의 모습이었다. 이 석고 캐스트들은 현재 폼페이 현장과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시간이 멈춘 일상의 흔적들
폼페이에서 발견된 것들은 웅장한 건축물뿐만이 아니었다. 일상의 세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빵집 화덕에서 탄화된 빵 81개가 발견되었는데, 이 중 일부는 현재까지도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벽에 새겨진 낙서는 1만 1,000개 이상이 기록되었다. 선거 유세 문구, 애인에 대한 사랑 고백, 검투사 경기 결과, 철학적 격언, 심지어 상점의 가격표까지 있었다. 외과 의사의 방에서는 정교한 청동 수술 도구들이 발견되었고, 세탁소에서는 세탁 중이던 천이 그대로 있었다. 79년 8월 24일 오전, 그 날의 하루가 통째로 멈춰 있는 것이었다.

아직 3분의 1이 땅속에
놀랍게도 폼페이 전체 면적의 약 3분의 1은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채 화산재 아래에 있다. 이탈리아 당국은 이미 발굴된 구역의 보존과 복원에 집중하는 한편, 새로운 구역의 발굴은 매우 신중하게 진행하고 있다.
2018년부터 시작된 그란데 폼페이 프로젝트(Grande Progetto Pompei)는 EU 자금을 투입해 폼페이의 체계적인 보존과 안전한 추가 발굴을 진행 중이다. 매년 새로운 발견이 보고되고 있으며, 2020년에는 마차 한 대가 완전한 형태로 발굴되어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2,000년을 건너온 인간의 목소리
폼페이에서 발견된 낙서들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떤 낙서는 “그리스인 레스비우스는 제게 술을 공짜로 줍니다”라고 적혀 있고, 어떤 것은 “나는 이곳에 있었다”는 단순한 존재 증명이다. 2,000년 전 사람들도 좋아하는 것을 자랑했고, 싫어하는 것에 불만을 표시했으며, 누군가를 그리워했다.
폼페이는 오늘날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방문되는 관광지 중 하나로, 연간 약 350만 명이 찾는다. 사람들은 2,000년 전 이 도시에서 살다 사라진 이들의 흔적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마치며 — 재난이 만든 영원
베수비오는 폼페이를 파괴했지만, 역설적으로 영원히 보존했다. 화산재 6미터가 없었다면 폼페이는 세월과 함께 허물어져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재난이 타임캡슐을 만들었고, 그 캡슐 속에 고대 로마의 하루가 살아 있다.
기원후 79년 8월 24일. 폼페이는 지금도 그 날에 멈춰 있다.
현재 폼페이 — 연간 350만 명이 찾는 역사 현장
오늘날 폼페이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방문되는 역사 유적 중 하나다. 연간 약 350만 명의 방문객이 전 세계에서 찾아온다. 2,000년 전 로마인들이 걷던 돌길을 그대로 밟고, 그들이 먹었던 음식의 흔적을 보고, 그들이 남긴 낙서를 읽는 경험은 어떤 박물관도 대신할 수 없다.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곳은 석고 캐스트가 전시된 구역과, 에로틱한 프레스코 벽화로 유명한 루파나레 건물이다. 폼페이 발굴품의 일부는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서도 전시되어 있어, 폼페이 방문과 함께 박물관도 들르는 것이 권장된다. 2018년부터 진행 중인 그란데 폼페이 프로젝트로 보존 상태가 개선되고 있으며, 2020년 발굴된 완전한 형태의 의식용 마차는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